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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소통 (수동적 의사소통, 자기효능감, 자기주장)

tinkle 2026. 10. 29. 19:30

목차


    착한 사람이 인간관계에서 더 빨리 지친다는 말, 처음 들으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15년간 심리치료사로 일한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꼽는 내담자의 고민이 결국 "사람 때문에 상처받는다"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접하고, 저는 착함과 소통 능력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 장관'을 신설할 만큼 사회적 고립을 국가적 의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소통은 성격이 아니라 배울 수 있는 기술이고, 그 기술을 연습하지 않으면 착한 사람일수록 더 오래, 더 깊이 지칩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영국 국립 심리치료사가 우울증과 불안증의 공통 증상 및 심리적 반응에 관해 설명하는 인터뷰 장면



    수동적 의사소통이 착함으로 오해받는 이유

    친구가 무례한 농담을 던졌을 때 불편했지만 웃으며 넘어간 적 있으십니까? 저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왜 그 말을 그냥 흘려보냈는지 혼자 곱씹으며 꽤 오랫동안 찜찜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행동 패턴을 수동적 의사소통(passive communication)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수동적 의사소통이란 자신의 감정과 요구를 억누르고 상대방의 반응에 맞춰가는 방식으로, 겉으로는 친절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억울함이 쌓이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이 패턴이 배려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는 배려, 갈등을 피하려는 배려. 하지만 저는 이걸 직접 경험하면서 느꼈는데, 배려에서 나온 침묵과 두려움에서 나온 침묵은 겉모습이 똑같아도 마음에 남기는 결과가 완전히 다릅니다. 전자는 내가 선택한 것이고, 후자는 내가 못 한 것입니다.

    영국 국립 심리치료 제도인 IAPT(Improved Access to Psychological Therapies)의 상담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된 패턴도 이와 일치합니다. IAPT란 영국 전역 각 구에 설치된 국민 상담소로, 우울증·공황장애·대인공포증 등을 인지행동치료(CBT) 방식으로 다루는 공공 심리치료 시스템입니다(출처: NHS England). 이 현장에서 80세, 심지어 92세 어르신들도 "왜 나는 이렇게 휘둘릴까"라고 털어놓는다는 것은, 수동적 의사소통이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한 번도 제대로 배운 적 없는 기술의 문제라는 강력한 방증입니다.

    아이 교육에서도 저는 이 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친구가 장난감을 빼앗았는데 아무 말 없이 양보하는 아이에게 "착하다"라고 칭찬하기 전에, 그 아이가 정말 기꺼이 양보한 것인지 먼저 살펴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 채 그냥 넘어간 것이라면, 칭찬은 오히려 그 패턴을 강화하는 셈이 됩니다.

    • 배려에서 나온 침묵: 내가 선택한 것 → 후회가 적다
    • 두려움에서 나온 침묵: 내가 못 한 것 → 억울함과 자책이 쌓인다
    • 둘의 겉모습은 같지만, 마음속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요약: 착함과 수동적 의사소통은 다른 개념이며, 두려움에서 나온 침묵은 배려가 아니라 억눌린 감정의 축적이다.

     

    자기주장적 의사소통, 공격 없이 경계를 긋는 기술

    소통 유형을 이야기할 때 흔히 "당당하게 말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실제로 시도해 보면 "당당함"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언어로 표현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때 필요한 개념이 자기주장적 의사소통(assertive communication)입니다. 자기주장적 의사소통이란 자신의 감정과 요구를 분명하게 표현하면서도 상대방의 권리를 동시에 존중하는 방식입니다. 상대를 공격하는 불도저형도, 속으로만 삭이는 수동형도 아닌 세 번째 길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불쾌한 말을 했을 때 즉각 반응하기보다 "무슨 뜻이야?"라고 짧게 질문하면서 시간을 버는 것, 그리고 "그 말은 조금 불편했어"라고 감정을 행동이 아닌 언어로 전달하는 것. 이 차이가 작아 보이지만 관계의 결을 완전히 바꿉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하나 있습니다. 화가 나는 것(feeling anger)과 화를 내는 것(acting out anger)은 다릅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화가 나는 감정은 자연스러운 신호입니다. 그 신호를 어떤 행동으로 표현하느냐는 별개의 선택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화내면 안 돼"보다 "화가 날 수는 있지만 친구를 때리면 안 돼"라고 설명하는 것이 훨씬 정확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은 인정받으면서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것은, 자기주장적 의사소통이 모든 상황에 통하는 만능열쇠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권력관계가 불균형하거나 상대방이 위협적인 상황에서는 안전을 먼저 고려해야 합니다. 소통 기술을 연습하는 것과 그 기술을 안전하게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함께 필요한 문제입니다.

    자기 효능감은

     

    칭찬이 아니라 시행착오에서 온다

    코로나19 이후 영국 성인의 절반 가까이가 자존감이 낮다고 답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SNS에서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나는 절대 뒤처지면 안 돼"라는 경직된 기준 아래 자신을 몰아붙이는 구조가 일상화되어 있으니까요.

    자존감 문제를 이야기할 때 칭찬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칭찬의 종류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는 정말 천재야"라는 결과 중심 칭찬과 "어려운 문제를 여러 방법으로 풀어보려 했구나"라는 과정 중심 피드백은 전달하는 메시지가 다릅니다. 전자는 계속 높은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이 될 수 있고, 후자는 학습 과정 자체를 이해하게 돕습니다.

    더 근본적으로, 자존감은 칭찬의 양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제시한 자기 효능감(self-efficacy) 개념이 여기서 유용합니다. 자기 효능감이란 특정한 과제를 해낼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직접 해본 경험을 통해 형성됩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쉽게 말해, "내가 해봤더니 됐다"는 경험이 쌓일 때 비로소 자신감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걸 직접 써봤는데,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해보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예상보다 상대방이 훨씬 괜찮게 받아들이더라고요. "사람들이 이 정도는 괜찮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경험이 쌓이면서 자기 효능감도 조금씩 올라갔습니다.

    다만 자기효능감과 자존감은 구분해야 합니다. 자기 효능감은 특정 행동에 대한 믿음이고,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전반적인 가치 인식입니다. 어떤 일을 잘 못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두 개념은 함께 키워가되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약: 자기효능감은 칭찬이 아니라 직접 시도해서 "됐다"는 경험이 쌓일 때 형성되며, 자존감은 그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실패하는 순간에도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수동적 의사소통이 습관이 된 것 같은데, 바꿀 수 있을까요?

    A. 소통은 성격이 아니라 기술입니다. 성격은 바꾸기 어렵지만 기술은 연습으로 달라집니다. 처음부터 어려운 상황에 도전하기보다 부담이 작은 상황에서 "무슨 뜻이야?"처럼 짧게 질문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예상보다 빠르게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Q. 자기주장적 의사소통이 공격적으로 보이지 않을까요?

    A. 자기주장적 의사소통의 핵심은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감정과 요구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불편했어"는 상대를 비난하는 문장이 아니라 내 경계를 알려주는 문장입니다. 오히려 억눌린 감정이 나중에 한꺼번에 터지는 것보다 관계에 훨씬 덜 해롭습니다.

     

    Q. 칭찬을 받으면 그냥 "고마워"라고 해도 되나요, 겸손하게 받아야 하나요?

    A. "고마워"라고 말하는 것이 자만심을 뜻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건넨 긍정적인 평가를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관계를 이어가는 자연스러운 방식입니다. 다만 칭찬이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에도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Q. 모든 사람에게 좋은 소리를 들으려 하면 왜 지치나요?

    A. 사람마다 기대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처음부터 충족 불가능한 목표입니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자신의 판단과 행동)과 통제할 수 없는 것(타인의 반응)을 구분하는 태도를 강조합니다. 상대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은 노력할 수 있지만, 상대가 반드시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통제 밖의 일입니다.

     

    결론

    건강한 소통은 갈등이 전혀 없는 관계를 만드는 기술이 아닙니다. 충돌이 생겼을 때 상대를 공격하거나 자신을 완전히 지우는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능력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실패하고 조금씩 나아지면서 쌓이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주장적 의사소통을 처음 시도할 때는 어색하고 두려운 게 당연합니다. 그 어색함을 피하지 않고 부담이 작은 상황에서 조금씩 시도해 보는 것, 그리고 예상보다 상황이 잘 풀렸을 때의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결국 자기 효능감이 되고 자존감이 됩니다. 무조건 착한 사람보다, 친절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오래 건강하게 관계를 이어갑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uU9SHC4mBz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