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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처음 접했을 때 저도 "아스퍼거 증후군이 사라졌다"는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이름이 없어졌다고 아이가 달라지는 건 아닌데, 왜 진단명을 통합했을까 싶었거든요.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의 진단 기준은 80년 넘는 시간 동안 조용히, 그러나 꽤 근본적으로 바뀌어 왔습니다.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아이의 발달을 어떤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진단명은 왜 계속 바뀌었을까 — 자폐 진단의 변천
자폐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건 1943년입니다. 미국의 소아정신과 의사 레오 캐너가 9명의 영아 사례를 분석하며 '조기 영아 자폐증(Early Infantile Autism)'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사회적 고립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가져온 'Autism'이라는 단어가 처음 쓰였습니다. 그 이듬해인 1944년에는 오스트리아의 한스 아스퍼거가 지능은 정상이지만 사회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따로 기술하며 'Autistic Psychopath'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 두 흐름을 하나로 묶은 사람이 영국의 소아정신과 의사 로나 윙입니다. 제가 자료를 들여다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로나 윙은 아스퍼거의 독일어 논문을 영어권에 처음 소개하면서 'Autistic Psychopath'를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명명했고, 자폐적 특성이 하나의 전형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스펙트럼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그녀가 강조한 핵심 증상은 세 가지, 상호작용·의사소통·상상력의 심각한 장애였습니다.
이후 1994년 DSM-4에서는 전반적 발달 장애(Pervasive Developmental Disorder)를 자폐성 장애, 레트 장애, 소아기 붕괴성 장애, 아스퍼거 증후군, PDD-NOS 등 다섯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여기서 PDD-NOS란 특정 기준을 충족하지 않지만 자폐적 특성이 일부 관찰되는 경우를 묶는 분류로, 쉽게 말해 "어딘가 해당하는 것 같긴 한데 딱 맞는 칸이 없다"는 아이들을 위한 진단이었습니다.
그러다 2013년 DSM-5에서 판이 완전히 바뀝니다. 기존의 다섯 가지 하위 유형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라는 단일 범주로 통합되었습니다. 레트 증후군은 청소년 이후 신경학적 질환으로 재분류되어 ASD 기준에서 빠졌고, 아스퍼거 증후군과 PDD-NOS도 독립 진단으로는 더 이상 쓰이지 않습니다. DSM-5의 핵심 진단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A 기준인 사회적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의 지속적인 결손, 그리고 B 기준인 제한적·반복적 행동과 감각 조절 이상입니다.
한 가지 흔한 오해가 있습니다. '스펙트럼'이라는 표현 때문에 진단 범위가 넓어졌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DSM-4보다 진단 기준이 더 엄격해진 측면이 있습니다. A·B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하고, 증상이 일상생활에서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장애를 실제로 유발해야 합니다. 스펙트럼은 경증부터 중증까지를 하나의 연속선으로 이해한다는 뜻이지, 문턱을 낮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 1943년 레오 캐너: 조기 영아 자폐증, 'Autism' 용어 첫 사용
- 1944년 한스 아스퍼거: 고기능 자폐 아동 기술, 'Autistic Psychopath' 표현
- 로나 윙: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명명, 스펙트럼 개념 제안
- 1994년 DSM-4: 전반적 발달 장애 5개 하위 유형으로 분류
- 2013년 DSM-5: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통합, 진단 기준 재정비
'말 잘하면 괜찮다'는 착각 — 스펙트럼을 제대로 이해하는 법
제가 이 주제를 파고들면서 가장 되새기게 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말을 잘한다는 것과 소통을 잘한다는 것은 같은 말일까요?" 제 경험상 이건 꽤 다른 문제였습니다.
DSM-5에서 아스퍼거 증후군이 사라진 뒤, 지능이 정상인 아동이 사회성 저하로 소아정신과를 찾을 때 우선 고려되는 진단은 세 가지입니다.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 장애, 비언어성 학습 장애, 그리고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Social Communication Disorder, SCD)입니다. 여기서 SCD란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에는 해당하지 않으면서도 화용 언어 기능이 저하되어 실제 대화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2013년 DSM-5에서 처음 도입된 진단으로, 과거에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라고 여겨졌던 화용 언어 부족이 저절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쌓이면서 별도 진단으로 추가되었습니다.
화용론이라는 언어학 개념이 여기서 중요해집니다. 화용론(pragmatics)이란 문장 자체의 뜻이 아니라 실제 대화 맥락 안에서 언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예를 들어 "여기 좀 춥네요"라는 말이 단순한 날씨 설명인지, 창문을 닫아달라는 간접 요청인지를 상황에서 읽어내는 것이 화용 능력입니다. 사회적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는 이런 맥락 파악에서 자주 막힙니다.
비언어성 학습 장애와 고기능 ASD(구 아스퍼거 증후군)는 둘 다 우뇌 기능 저하로 인한 사회성 저하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고기능 ASD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 기준을 충족하고, 비언어성 학습 장애는 그렇지 않습니다. 즉, 자폐적 성향이 진단 기준에 미치지 않는 상태에서 우뇌 기능 저하로 사회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비언어성 학습 장애입니다. 이 둘을 인터넷에서 동의어처럼 쓰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제 경험상 이 구분을 흐리면 실제 지원 방향을 잡는 데 혼선이 생깁니다.
진단을 가르는 또 다른 중요한 소견이 있습니다. 손가락을 반복적으로 튕기는 핑거 플리커링, 손을 흔드는 핸드 플래핑, 몸을 앞뒤로 흔드는 바디 락킹 같은 상동 증상(stereotyped behavior)이 관찰되면 고기능 ASD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여기서 상동 증상이란 특정 동작이나 행동을 목적 없이 반복하는 것을 가리키며,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B 기준에 해당하는 핵심 특성 중 하나입니다.
또 하나 짚고 싶은 것은 '덕후 성향'과 '자폐적 집착'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정 분야에 깊이 빠져드는 건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고, 그 자체가 진단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집착이 일상생활에 실제 장애를 유발하는지, 다른 자폐적 특성과 함께 나타나는지를 함께 보는 게 맞습니다. 이 점은 출처: 미국정신의학회(APA) DSM 공식 페이지에서도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조기 중재, 아이를 '고치려는' 목표가 맞는 걸까 — 치료의 방향
조기 중재의 중요성을 다루는 연구 결과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조금 복잡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치료를 많이 받으면 더 나아진다"는 말이 틀린 건 아닌데, 그게 곧 아이를 '정상처럼' 만드는 게 목표여야 한다는 뜻인지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020년 미국 11개 주에서 8세 자폐 아동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있습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백인 자폐 아동 중 고기능(IQ 71 이상)에 해당하는 비율이 69%였던 반면, 흑인 자폐 아동에서는 저 기능(IQ 70 이하) 비율이 50%에 달했습니다. 이 차이를 단순히 인종적 요인으로 보기 어렵고, 백인 아동들이 어린 시절부터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조기 중재를 받아 기능이 개선된 결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습니다(출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폐 데이터). 국내에서도 ABA(응용행동분석) 기반의 주 20시간 이상 집중적인 조기 중재가 ASD 치료의 핵심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24~36개월 이전에 시작할수록 효과가 큽니다.
여기서 ABA(Applied Behavior Analysis), 즉 응용행동분석이란 행동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여 바람직한 행동을 강화하고 문제 행동을 줄여가는 체계적인 접근법을 의미합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조기 중재에서 가장 근거가 축적된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저는 ABA를 비롯한 모든 중재 방식이 개별 아동의 특성과 정서적 안정, 가족 여건을 고려해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눈 맞춤을 강제로 길게 유지하게 하는 훈련이 모든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상대방 얼굴에 계속 집중하는 것 자체가 의사소통에 쓸 에너지를 오히려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는 개념도 여기서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신경가소성이란 경험과 학습에 따라 뇌의 신경 연결이 변화하고 재구성될 수 있는 성질을 말합니다. 발달 초기일수록 이 특성이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조기 중재의 효과가 더 두드러집니다. 다만 신경가소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치료를 많이 받으면 모든 아이가 같은 수준에 도달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효과의 크기와 방향은 아이마다 다르며, 이를 일반화하는 데는 신중해야 합니다.
제가 결국 중요하다고 느낀 것은 치료의 목표 설정입니다. 아이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고, 불편한 감각 환경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고 또래와 똑같아 보이도록 만드는 것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언제나 같은 목표는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장애의 사회적 모델은 이 지점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사회적 모델이란 개인의 신체적·인지적 특성뿐 아니라 사회 환경의 장벽이 장애 경험에 영향을 준다는 관점으로, 아이에게만 적응을 요구하는 방식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교실이 너무 시끄럽다면, 아이를 훈련시키기에 앞서 환경을 조정하는 것도 엄연한 지원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이 사라졌다면, 기존에 아스퍼거 진단을 받은 아이는 어떻게 되나요?
A. DSM-5로 바뀌면서 아스퍼거 증후군은 공식 진단명으로는 사라졌지만, 이미 진단을 받은 경우 그 진단이 갑자기 취소되거나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는 같은 특성을 가진 아이를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진단하며, 지원 방향 자체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진단명보다 아이의 실제 어려움과 강점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Q. 말이 늦으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가요?
A. 언어 발달 지연 자체가 곧 자폐 진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언어 장애, 지적 장애, 청력 문제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진단되려면 사회적 의사소통의 지속적인 어려움과 제한적·반복적 행동이 함께 확인되어야 합니다. 단어 수만이 아니라 눈맞춤, 몸짓, 상호작용에 대한 관심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Q.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와 비언어성 학습 장애는 같은 건가요?
A. 비슷해 보이지만 별개의 진단입니다. 둘 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기준에 해당하지 않고 지능이 정상 범주이면서 사회성에 어려움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비언어성 학습 장애의 핵심은 우뇌 기능 저하로 인한 시지각 발달의 어려움이고,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의 핵심은 화용 기능 저하입니다. 경우에 따라 두 진단이 동시에 내려지기도 합니다.
Q. ABA 치료는 꼭 받아야 하나요?
A. ABA(응용행동분석)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조기 중재에서 가장 근거가 풍부한 방법 중 하나이고, 국내에서도 주 20시간 이상의 집중 중재가 권장됩니다. 다만 모든 아이에게 동일한 방식이 맞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의 특성과 정서적 안정, 가족의 여건을 함께 고려해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며, 담당 전문가와 충분히 상의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결론
이번 내용을 정리하면서 제가 가장 크게 남긴 생각은 하나입니다. 진단명은 아이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이지, 아이의 가능성을 결정하는 이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DSM이 바뀌어도 아이는 어제와 같은 아이이고, 오늘 어떤 어려움을 겪고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진단명보다 훨씬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조기 평가와 중재는 분명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변화해야 하는 것이 아이만은 아닙니다. 아이를 둘러싼 환경과 어른들의 시선, 그리고 "정상"이라는 기준 자체도 함께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발달의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특성에 맞는 환경과 지원을 찾아가는 것이 진짜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