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제가 처음 아이를 키울 때는 '긍정양육'이라는 말 자체를 몰랐습니다. 그저 아이가 잘못하면 혼내고, 말을 안 들으면 목소리를 높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21년 민법 징계권 조항이 폐지되면서 부모의 체벌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다는 사실도, 그때서야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체벌 없는 훈육이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이 제시한 '긍정양육 1·2·9 원칙'을 접하고 나서, 제 양육 방식을 근본부터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 원칙은 하나의 기본 전제, 두 가지 실천 원리, 아홉 가지 구체적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는 데서 출발합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체벌 금지 시대, 긍정양육이 필요한 이유
2021년 1월 26일, 민법 제915조 징계권 조항이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이는 부모가 훈육 목적이라도 자녀를 때리는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동복지법 제3조 제7호에서는 아동학대를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하는 신체적·정신적 폭력, 가혹행위, 유기, 방임'으로 정의합니다(출처: 법제처). 여기서 핵심은 '아이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겼는가'입니다.
과거 많은 부모들이 경험했던 빨간 구두, 회초리 같은 체벌 도구는 이제 법적으로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부모님이 손을 드시는 일이 흔했고, 학교에서도 매를 맞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그게 '훈육'이라고 여겨졌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기억 자체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실제로 체벌은 즉각적 복종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아이의 자존감을 낮추고 폭력을 학습시키는 부작용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체벌 없이 어떻게 아이를 훈육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긍정양육(Positive Parenting)'입니다. 긍정양육이란 아이의 행동을 무조건 허용하거나 칭찬만 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아이를 독립된 존재로 존중하며, 이해와 믿음을 바탕으로 양육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긍정양육의 1·2·9 원칙은 이러한 철학을 구체적 실천 방법으로 풀어낸 것입니다.
'1'은 기본 전제로, 아이가 스스로 성장하는 힘을 가진 독립된 인격체라는 인식입니다. 제가 예전에 아이를 마치 제 소유물처럼 대했던 적이 있습니다. "내가 너 키우는데 왜 말을 안 들어?"라는 식이었죠. 하지만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본다는 것은, 아이도 자기만의 감정과 생각이 있으며 부모가 일방적으로 통제할 대상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것입니다.
'2'는 두 가지 실천 원리입니다. 첫째, 부모 자신과 아이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해(Understanding)란 상대방의 감정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감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둘째,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아이는 아직 어리지만 스스로 배우고 성장할 힘이 있다는 믿음, 부모는 완벽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이 관계의 토대가 됩니다.
마지막 '9'는 아홉 가지 구체적 실천 방법입니다. 자녀 알기, 나를 돌아보기, 경청하고 공감하기, 관점 바꾸기, 온전히 집중하기, 일관성 유지하기, 실수 인정하기, 함께 성장하기, 함께 키우기로 구성됩니다. 특히 '온전히 집중하기'는 제가 가장 실천하기 어려웠던 부분입니다. 아이와 시간을 보낼 때 핸드폰을 보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내 경험으로 본 긍정양육의 실제 효과
제 아이가 다섯 살 때였습니다. 마트에 갈 때마다 장난감 코너 앞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울면서 "사줘, 사줘"를 외쳤습니다. 처음에는 주변 시선도 신경 쓰이고 제 자존심도 상해서 "안 사준다고 했잖아, 그만 울어"라며 다그쳤습니다. 심지어 손을 잡아끌고 억지로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더 크게 울었고, 집에 와서도 한참 동안 기분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저도 죄책감과 답답함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어느 날은 정말 지쳐서, 이번에는 방법을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아이 옆에 쪼그려 앉아서 눈을 맞추고 "지금 이 장난감이 너무 갖고 싶어서 속상한 거지?"라고 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긍정양육 9가지 실천 방법 중 '경청하고 공감하기'에 해당합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아이가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는 왜 그 장난감이 좋은지 조심스럽게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난감을 사주지는 않았지만, 왜 지금은 안 되는지 차분히 이유를 설명하고 다음에 받을 수 있는 보상을 약속하자 생각보다 쉽게 상황이 정리되었습니다.
이 경험 이후로 저는 아이의 행동만 보고 통제하려 하기보다, 그 행동 뒤에 숨은 감정을 먼저 보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떼를 쓴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이가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관점 바꾸기'입니다. 관점 전환(Perspective Shift)이란 같은 상황을 다른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인지적 전략을 의미합니다.
긍정양육 원칙 중 '일관성 유지하기'도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제 경우 피곤할 때는 원칙을 지키기 힘들었습니다. 평소에는 게임 시간을 정해놓고 지키게 하는데, 어떤 날은 그냥 내버려 두고, 또 어떤 날은 갑자기 엄하게 제지하곤 했습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일관성(Consistency)은 양육에서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여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는 핵심 요소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실수 인정하기'입니다. 제가 실수로 약속을 어기거나 화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른인 제가 아이에게 사과하면 권위가 떨어질까 봐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아빠가 화를 내서 미안해. 아빠도 실수할 때가 있어"라고 말하자, 오히려 아이가 저를 더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도 "아,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거구나. 인정하고 고치면 되는 거구나"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긍정양육 1·2·9 원칙은 이상적으로만 들릴 수 있습니다. 특히 맞벌이 부모나 다자녀 가정에서는 '온전히 집중하기', '경청하고 공감하기' 같은 원칙을 매 순간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저 역시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와서 지친 상태에서 아이 이야기를 온전히 듣는 것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긍정양육이 마치 '충분히 노력하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표준'처럼 제시되는 느낌도 있어, 오히려 부모에게 또 다른 부담과 죄책감을 줄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이 원칙들은 '정답'이라기보다 하나의 참고 기준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완벽하게 실천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방향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고, 이해와 믿음을 바탕으로 관계를 만들어가려는 노력 자체가 의미 있습니다.
긍정양육은 단순히 체벌을 하지 않는 것을 넘어, 아이와 부모 모두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관계를 지향합니다. 저는 이 원칙을 알고 나서 제 양육 방식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조금씩이나마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나은 부모가 되려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양육의 핵심은 결국 '함께 성장하기'입니다. 아이도 성장하고, 부모인 우리도 함께 성장하는 것. 그것이 진짜 긍정양육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