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모들이 20년 전보다 육아가 10배 더 힘들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아이를 키우며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 난이도, 부모가 스스로 높인 건 아닐까요?
잔디 깎기 부모가 아이의 회복탄력성을 빼앗는다
일반적으로 아이가 넘어지지 않게 미리 길을 닦아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오히려 아이의 성장 기회를 빼앗는 행동이었습니다.
'잔디 깎기 부모(Lawnmower Parent)'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여기서 잔디 깎기 부모란 아이가 걸어갈 길 앞에 있는 모든 장애물을 부모가 미리 제거해 주는 양육 방식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아이가 어려움을 겪기 전에 부모가 먼저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저 역시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이런 부모였습니다. 숙제를 하다 막히면 옆에 앉아 문제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고, 시간이 없을 때는 대신 풀어준 적도 있었습니다.
뇌 과학적으로 보면 전두엽(Prefrontal Cortex) 발달 기회를 부모가 박탈하는 셈입니다. 전두엽은 문제 해결 능력과 판단력을 담당하는 뇌 영역으로, 실패와 도전을 통해 성장합니다(출처: 서울대학교 뇌인지과학과). 아이가 넘어졌을 때 "아프구나, 다음엔 조심해야지"라고 스스로 깨닫는 과정에서 전두엽이 활성화되는데, 부모가 넘어질 일 자체를 없애버리면 이 학습 기회가 사라지는 겁니다.
어느 날 저는 아이에게 "어디까지 생각해 봤어?"라고만 물어보고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투덜거리며 짜증을 냈지만, 시간이 지나자 스스로 책을 다시 보고 문제를 풀어내는 순간이 늘어났습니다. 정답을 맞혔을 때의 표정이 예전보다 훨씬 뿌듯해 보였고, 실패해도 다시 시도하는 태도가 생겼습니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무릎이 까져봐야 생기는 능력이라는 걸 그때 실감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식당에서는 스마트폰, 차에서는 태블릿, 집에서는 꽉 찬 학원 스케줄. 뇌 과학에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DMN이란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릴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으로, 창의적 사고와 자기 성찰을 담당합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화려한 영상이 뇌를 계속 자극하면 이 영역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합니다. "심심해"라는 말은 "나 이제 창의적인 걸 해볼까"라는 신호인데, 그때 영상을 쥐여주면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립니다.
훈육 권위를 잃은 부모, 사회에서 미움받는 아이
일반적으로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는 게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아이를 키워보니 적절한 권위 없이는 육아가 불가능했습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에게 혼을 못 냅니다. "아이 기죽으면 안 된다", "정서에 상처를 준다"는 말 때문에 훈육을 두려워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식당에서 아이가 뛰어다녀도 "하지 마"라고 말로만 하고 제지를 못했습니다. 가정 내에서 부모의 권위가 무너지는 순간, 육아는 지옥이 됩니다.
권위적(Authoritative) 부모와 독재적(Authoritarian) 부모는 다릅니다. 여기서 권위적 부모란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되 명확한 규칙과 경계를 제시하는 양육 방식을 말합니다. 반면 독재적 부모는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복종을 강요하는 스타일입니다. 발달심리학자 다이애나 바움린드(Diana Baumrind)의 연구에 따르면 권위적 양육이 아이의 정서 발달과 사회성에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
부모가 아이의 눈치를 보는 순간 아이는 혼란스러워합니다. 배가 항해를 하는데 선장인 부모가 우왕좌왕하고 선원인 아이가 눈치를 보면, 그 배에 탄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해주는 부모 밑에서 아이는 오히려 안정감을 느낍니다.
제가 아이에게 "이건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하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아이가 처음엔 반발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예전보다 덜 떼를 쓰게 됐습니다. 명확한 경계가 있으니 그 안에서는 편하게 행동하더군요. 가정 내에서 부모의 권위가 무너지면 아이는 사회에 나가서도 자기가 왕인 줄 알고 행동하다가 결국 왕따가 됩니다. 내 아이가 밖에서 미움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집에서는 부모가 엄격한 판사가 되어야 합니다.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되 최종 결정권은 부모에게 있다
- 규칙은 명확하게 정하고 일관성 있게 지킨다
- 잘못했을 때는 단호하게, 잘했을 때는 충분히 칭찬한다
요즘 육아가 힘든 이유는 부모가 매니저 역할까지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육아 커뮤니티,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 쏟아지는 정보들이 부모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옆집은 벌써 영어를 뗐다더라", "이 교구 안 사주면 발달이 늦는다더라"는 말들이 부모를 조급하게 만들고, 결국 아이의 24시간을 빈틈없이 관리하게 만듭니다. 밥 먹이고, 학원 라이딩하고, 숙제 봐주고. 그렇게 되면 부모의 인생은 없습니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데, 부모는 번아웃 상태고 아이는 숨 막혀하는 상황이 됩니다.
저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말씀드립니다. 조금 대충 키워도 괜찮습니다. 여기서 대충은 방치가 아니라 믿고 지켜보는 여유를 의미합니다. 심리학에서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그냥 적당히 좋은 엄마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세세하게 관리하고 실패 안 하게 막아주는 건 부모가 아니라 비서의 역할입니다.
놀이터에서 좀 넘어지게 두세요. 약 바르면 낫습니다. 친구랑 싸우게도 두세요. 화해하는 법을 배웁니다. 밥을 안 먹으면 한 끼 굶기세요. 배고프면 다 먹습니다. 20년 전에 우리가 혼자 놀고 자랐어도 멀쩡하게 컸듯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스스로 자라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 힘을 믿어주세요.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투박하지만 단단한 부모, 그거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