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키우다 보면 문득 “요즘 아이랑 대화가 줄어든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예전에는 하루에 있었던 일을 자연스럽게 늘어놓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질문에 짧게 대답하거나 “몰라”, “그냥” 같은 말로 대화를 끝내기 시작한다. 나 역시 그런 시기를 겪었다. 아이가 특별히 반항적이거나 감정적으로 불안해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예전과는 다른 거리감이 느껴졌다. 이 글은 아이와의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던 시기에, 질문 방식을 바꿔보며 경험한 변화와 그 의미를 정리한 기록이다.
대화를 살리기 위해 질문이 늘어났던 시기
아이와의 대화가 줄어든다고 느낀 뒤, 나는 자연스럽게 질문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오늘 학교 어땠어?”, “재미있는 일 없었어?”, “친구랑은 잘 지냈어?” 같은 질문을 하루에도 여러 번 던졌다. 대화를 다시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아이의 대답은 점점 더 짧아졌고, 질문이 끝나면 대화도 함께 끝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때는 아이가 대답을 회피한다고 느꼈지만, 돌이켜보면 아이는 나름대로 자신의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다만 내가 기대했던 형태의 대답이 아니었을 뿐이다.
‘대화를 위한 질문’이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
어느 날 아이의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내가 던지는 질문들이 아이에게는 대화를 위한 초대가 아니라 무언가를 설명해야 하는 과제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을 받는 순간 아이는 자신의 하루를 정리해서 말해야 하고, 적절한 답을 골라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지도 모른다.
이 깨달음 이후, 질문의 목적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정말 아이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묻고 있는지, 아니면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질문의 형태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하다
가장 먼저 시도한 변화는 질문의 형태였다. 이전에는 “잘했어?”, “재미있었어?”처럼 예 또는 아니오로 끝나는 질문을 자주 사용했다. 이런 질문은 빠른 대답을 얻을 수는 있지만, 대화를 이어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질문을 조금 느슨하게 바꿔보았다. 결과나 평가를 묻기보다, 아이가 스스로 선택해서 말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질문이었다. “오늘 하루 중에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어?”처럼 꼭 하나의 정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이의 반응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질문을 받았을 때 잠시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점에서 작은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질문을 던진 뒤, 침묵을 견디는 연습
질문 방식만큼이나 중요한 변화는 질문 이후의 태도였다. 이전에는 아이가 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침묵을 채우기 위해 또 다른 질문을 덧붙이곤 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아이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기보다는, 대답을 재촉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질문을 한 뒤에는 일부러 기다리는 시간을 늘렸다. 아이가 바로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었고, 침묵이 흘러도 불안해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 침묵은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준 것 같았다.
답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을 던지다
또 하나의 변화는 질문에 반드시 답이 돌아와야 한다는 기대를 내려놓은 것이었다. 이전에는 질문을 던진 뒤, 아이가 어떤 대답을 해주길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실망감이 쌓였고, 그 감정이 다시 질문의 톤에 묻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질문의 역할을 조금 낮추기로 했다. 질문은 대화를 열기 위한 시도일 뿐, 반드시 이어져야 할 의무는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이 변화는 아이뿐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대화는 말보다 분위기에서 시작된다는 깨달음
질문 방식을 바꾸며 느낀 가장 큰 깨달음은, 대화는 말의 기술보다 관계의 안정감과 분위기에서 시작된다는 점이었다. 아이가 편안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질문도 부담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질문을 던지기 전에 아이의 상태를 먼저 살피게 되었다. 피곤해 보이는 날에는 질문을 아예 하지 않기도 했고, 혼자 있고 싶어 보일 때는 곁에 조용히 있어 주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 질문을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대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작은 변화들이 만들어낸 대화의 흐름 변화
이런 변화들이 쌓이면서, 아이와의 대화는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깊은 이야기가 늘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스스로 말을 꺼내는 순간이 조금씩 늘어났다. 질문 없이도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모습도 보였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눈에 띄는 성과가 없어 보이는 변화였지만, 대화의 질은 분명히 달라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대화를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는 모습이 가장 큰 변화였다.
마무리하며
아이와 대화가 잘 안 될 때, 나는 더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질문 방식을 바꾸며 깨달은 것은, 대화를 여는 힘은 질문의 완성도가 아니라 기다림과 여유에 있다는 점이었다. 말을 끌어내려 하기보다, 아이가 스스로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 글은 특별한 대화 기술을 소개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다만 아이와의 대화가 막혀 있다고 느꼈던 한 부모가, 질문 방식을 조금 바꾸며 관계의 흐름이 달라졌음을 정리한 경험 기록이다. 이 기록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다른 선택도 가능하다는 작은 위로와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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