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자녀는 자녀, 나는 나'라는 말이 이렇게 어려운 말인 줄 몰랐습니다. 말로 들으면 너무 당연한데, 막상 아이가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라고 내뱉는 순간 그 분리가 얼마나 불가능한지 실감하게 됩니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가 겪는 심리적 고통,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제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풀어보려 합니다.사랑의 역설 — 더 많이 줄수록 더 크게 흔들린다제가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래서 그랬구나'였습니다. 아이가 차갑게 돌아설 때 그렇게 무너지는 이유, 사실 설명이 있었습니다.'사랑의 역설'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상대방의 반응에 더 크게 흔들리는 심리적 구조를 말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이 역설..
"넌 왜 이렇게 느려?" 아이를 재촉하려고 한 말인데, 그 말이 아이 안에서 '나는 느린 사람'이라는 이름표가 되어 붙어버릴 수 있습니다. 아동 발달 전문가 원민우 교수의 사례를 접하면서, 저도 일상에서 무심코 뱉었던 말들을 오래 되짚어보게 됐습니다. 행동을 고치려다 존재를 규정해버리는 말, 그리고 그것을 바꾸는 방법을 정리했습니다.부모의 말이 아이의 이름표가 되는 순간아동 발달 및 언어 발달 전문가 원민우 교수는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라벨링(labeling)을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라벨링이란 특정 표현을 반복적으로 들은 아이가 그 말을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내면화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굼뜨다'는 말을 자주 들은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조급함을 달고 사는 것, '실수하니'라는 별..
많은 가정에서 부모가 대화의 70~80%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저도 순간 멈칫했습니다. 아이와 많이 대화할수록 말하기 실력이 늘 거라고 믿었는데, 정작 그 대화에서 말을 더 많이 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돌아보니 답이 분명해졌습니다. 아이를 말 잘하는 사람으로 키우는 일이 "더 많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비워주는 것"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지금부터 풀어보겠습니다. 대화 비율과 수용적 경청 — 부모가 덜 말할수록 아이는 더 말한다언어 발달 연구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발화 기회(turn-taking opportunity)'입니다. 여기서 발화 기회란 대화 중 상대방이 말을 시작하고 이어나갈 수 있는 물리적·심리적 공간을 뜻합니다. 아이의 언어 능력은 이 공간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25년간 500만 명의 부모와 아이를 만나온 결과, 아이가 잘 되는 집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학원 수나 공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집에 들어섰을 때의 분위기, 그 한 가지였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머릿속에서 어린 시절 현관문을 열던 순간이 불쑥 떠올랐습니다.엄마의 인상이 집의 공기를 바꾼다 제가 어릴 때를 돌이켜보면, 부모님이 정확히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는 생각보다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던 순간의 공기는 지금도 선명합니다. 오늘은 말을 걸어도 되는 날인지,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야 하는 날인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몸이 먼저 알았습니다.이런 맥락에서 "엄마가 집에 들어왔을 때 집안 분위기가 환해지면 인상, 엄마가 나가야 집이 환해지면 진상"이라는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