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시기를 떠올리면 먼저 ‘소리’가 떠오른다
그 시기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대화가 아니다. 집 현관문이 열릴 때의 소리, 가방 지퍼를 여는 소리, 신발을 벗는 소리처럼 아주 작은 소리들이 먼저 생각난다. 예전에는 “다녀왔어!” 하는 인사와 함께 이어지던 소리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조용한 움직임으로만 남아 있었다. 아이가 집에 들어오는 방식이 바뀌었다고 느낀 건, 그 작은 소리들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부모는 이유를 몰라도 변화는 알아챈다. 아이는 그대로인 것 같아도, 표정이 아주 조금 달라지고, 말투가 조금 낮아지고, 집 안에 머무는 방식이 달라진다. 그 변화는 한 번에 크게 나타난 게 아니어서 더 혼란스러웠다. 어느 날은 괜찮아 보이고, 어느 날은 유난히 지쳐 보였다. 그 사이에서 부모는 ‘괜찮은 날’을 기준으로 삼아 안심하고 싶다가도, ‘힘들어 보이는 날’ 하나로 다시 마음이 흔들리곤 했다.
“무슨 일이야?”를 묻기 전에 멈칫하게 되었다
부모는 자연스럽게 질문을 떠올린다. 학교는 어땠는지, 친구랑은 괜찮은지, 혹시 속상한 일이 있었는지. 하지만 그 시기의 나는 질문을 입 밖으로 내는 게 조심스러웠다. 질문이 필요한 순간이 분명히 있었지만, 질문이 아이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같이 따라왔기 때문이다.
아이의 표정이 이미 단단히 굳어 있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에는 어떤 말도 쉽게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부모가 묻는 질문이 “관심”으로 전달될 수도 있지만, “확인”이나 “점검”으로 들릴 수도 있다. 나는 아이가 마음을 열어주길 바랐지만, 동시에 아이가 더 닫히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결국 그 시기의 많은 순간들은 질문과 침묵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며 지나갔다.
아이보다 먼저 흔들린 것은 부모의 하루였다
아이의 학교 생활이 힘들어 보일수록 부모의 하루도 달라졌다. 나는 아이가 학교에 있는 시간에도 자꾸 마음이 그쪽으로 향했다. 별일 아닌 것 같은 장면을 떠올리고, ‘혹시 그때 이런 일이 있었던 걸까’ 하고 상상하기도 했다. 아이의 대답이 짧았던 날, 표정이 무거웠던 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 잠깐 멈칫하던 모습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되었다.
그때 깨달은 건, 부모의 불안은 “아이를 돕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자라난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를 사랑하니까 걱정이 생기고, 걱정이 생기니까 더 알고 싶어지고, 더 알고 싶으니까 더 묻게 된다. 그런데 그 흐름이 계속되면 아이에게도 압박이 될 수 있다. 부모는 아이를 위해 움직이지만, 그 움직임이 아이에게 ‘나를 관찰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아이의 상태’뿐 아니라 ‘부모의 반응’도 함께 점검해야 한다고 느꼈다.
“알아야 한다”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는 연습
부모는 아이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시기에 나는 “지금 당장 다 알아야만 한다”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는 연습을 했다. 이유를 알아야만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은 그럴듯하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감정이 바로 말로 정리되지 않는다. 아이가 힘든 이유가 하나로 정리될 수도 없고, 하루마다 달라질 수도 있다.
나는 아이가 말을 하지 않는 이유가 단순히 숨기기 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려고 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고, 말로 꺼내는 것 자체가 부담일 수도 있다. 혹은 말로 표현하면 더 크게 느껴질까 봐 조심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때 나는 ‘정확한 답을 얻는 것’보다, 아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시간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대화의 방식이 바뀌었다: 질문보다 확인, 확인보다 동행
예전에는 “오늘 어땠어?”라는 질문이 자연스러웠다면, 그 시기에는 질문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줄이고, 대신 ‘확인’의 방식으로 접근해보려 했다. 단, 확인은 점검처럼 들리지 않도록 아주 짧게, 그리고 반복하지 않는 방식으로 했다. 어떤 날은 아예 학교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날도 있었다.
대화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관계가 멀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기에는 말이 적은 대신,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같은 공간에서 각자 다른 일을 하면서도, 아이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해야만 가까운 게 아니다’라는 사실을 그때 더 분명하게 느꼈다. 아이에게는 말을 꺼내기 전에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을 집이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게 중요해 보였다.
부모의 기준이 아이를 더 힘들게 하고 있지 않았는지
그 시기를 지나며 가장 자주 떠올랐던 질문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아이에게 내가 기대하는 모습이 있었나?’ 부모는 대놓고 기대를 말하지 않아도, 표정과 말투, 반응 속도에서 기대가 드러난다. 아이가 평소처럼 웃지 않으면 걱정이 되고, 평소처럼 말하지 않으면 이유를 찾고 싶어지는 것. 그 자체가 아이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나는 아이의 학교 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것’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에게도 기복이 있고, 날마다 컨디션이 다르며, 관계도 매일 같지 않다. 그런데 부모는 종종 ‘예전의 아이’를 기준으로 현재를 판단한다. 그 기준이 아이에게는 ‘나는 지금 부족한가?’라는 메시지로 전달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시기에는 아이의 상태를 평가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좋아졌다, 나빠졌다의 판단보다, “오늘은 이런 날이구나”라고 받아들이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변화는 극적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축적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시기를 지나며 모든 것이 단번에 달라진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활짝 웃으며 학교 이야기를 꺼낸 것도 아니고, 모든 불편함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집 안의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부모가 급하게 반응하지 않으니, 아이도 조금 덜 경계하는 듯했고,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작은 장면들이 쌓였다. 가방을 내려놓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던 아이가 잠시 거실에 앉아 있는 날이 생기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단답이던 대답이 조금 길어지는 날이 생기고, “오늘은 그냥 피곤해” 같은 말을 조용히 꺼내는 날이 생겼다. 그 변화는 작았지만, ‘아이의 마음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었구나’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그 느낌만으로도 부모의 마음은 조금 덜 흔들릴 수 있었다.
그 시기를 지나며 부모로서 남은 것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 아이의 학교 생활이 힘들어 보이던 시기는, 아이만의 시간이 아니라 부모의 시간이기도 했다. 부모는 아이를 바라보며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다. 불안, 조급함, 미안함, 때로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 같은 무력감까지. 그 감정들은 불편하지만, 동시에 부모가 아이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감정이기도 했다.
나는 그 시기를 통해 ‘부모의 역할’이 항상 앞에서 끌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시간에는 아이가 스스로 지나갈 수 있도록 옆에서 속도를 맞추는 것이 더 필요할 수 있다. 크게 뭔가를 바꾸지 못해도, 최소한 아이가 집에서 숨을 고를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게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가장 현실적인 역할이었다고 느낀다.
마무리: 답을 남기기보다,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 시기를 ‘정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리되지 않는 채로 남아 있는 감정과 장면들이 있기 때문에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아이의 어려움은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없고, 부모의 마음 역시 단순한 결론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다만 그 시간을 지나며 나에게 남은 건, 어떤 장면들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만약 시간이 한참 지나 다시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나는 그때의 내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아이를 바라보았는지, 얼마나 서둘러 답을 찾으려 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천천히 그 마음을 내려놓으려 했는지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아이 역시 그 시기를 자신의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고, 부모는 그 옆에서 함께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 시기는 충분히 기억해 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 · 교육 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이 친구 관계 문제로 고민하며 알게 된 점 (0) | 2026.01.25 |
|---|---|
| 담임 선생님 상담 전 미리 정리하면 좋았던 것들 (0) | 2026.01.24 |
|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달라진 아이 생활 패턴 정리 (0) | 2026.01.23 |
| 아이의 공부 습관을 만들기 위해 결과보다 생활 리듬을 먼저 살펴본 기록 (0) | 2026.01.21 |
| 아이 학원 선택을 두고 고민이 깊어질 때 부모가 정리해본 기준들 (0) | 2026.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