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자녀는 자녀, 나는 나'라는 말이 이렇게 어려운 말인 줄 몰랐습니다. 말로 들으면 너무 당연한데, 막상 아이가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라고 내뱉는 순간 그 분리가 얼마나 불가능한지 실감하게 됩니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가 겪는 심리적 고통,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제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풀어보려 합니다.사랑의 역설 — 더 많이 줄수록 더 크게 흔들린다제가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래서 그랬구나'였습니다. 아이가 차갑게 돌아설 때 그렇게 무너지는 이유, 사실 설명이 있었습니다.'사랑의 역설'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상대방의 반응에 더 크게 흔들리는 심리적 구조를 말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이 역설..
사춘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한 가지 장면이 떠오릅니다. 어릴 때는 부모가 하는 말에 곧잘 대답하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몰라", "됐어"라는 말만 반복하는 장면입니다. 그 변화가 너무 갑작스러워서 처음에는 아이가 나쁜 버릇을 들인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직접 이 주제를 깊이 들여다보니, 그 짧은 단어들 뒤에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사춘기 뇌에서 벌어지는 일들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사춘기 아이의 행동이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뇌의 구조적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처음 제대로 접했을 때, 머릿속에서 무언가 딸깍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가장 먼저 일어나는 변화는 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대규모 가지치기입니다. 전두엽이란 충동을 억제하..
"넌 왜 이렇게 느려?" 아이를 재촉하려고 한 말인데, 그 말이 아이 안에서 '나는 느린 사람'이라는 이름표가 되어 붙어버릴 수 있습니다. 아동 발달 전문가 원민우 교수의 사례를 접하면서, 저도 일상에서 무심코 뱉었던 말들을 오래 되짚어보게 됐습니다. 행동을 고치려다 존재를 규정해버리는 말, 그리고 그것을 바꾸는 방법을 정리했습니다.부모의 말이 아이의 이름표가 되는 순간아동 발달 및 언어 발달 전문가 원민우 교수는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라벨링(labeling)을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라벨링이란 특정 표현을 반복적으로 들은 아이가 그 말을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내면화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굼뜨다'는 말을 자주 들은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조급함을 달고 사는 것, '실수하니'라는 별..
솔직히 저는 한동안 '불행은 그냥 운이 나쁜 사람에게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ACE 연구(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Study)가 1만 7천 명을 추적해서 내놓은 결과를 접하고 나서 그 생각이 꽤 흔들렸습니다. 불행은 사건이 아니라 패턴으로 전달된다는 것, 그리고 그 패턴은 세대를 건넌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살아온 방식이 아이에게 어떻게 옮겨가는지, 그리고 그 연결고리를 어디서부터 끊을 수 있는지 제가 이해한 방식대로 풀어보겠습니다.불행이 전달되는 메커니즘ACE 연구는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Adverse Childhood Experiences)이 성인이 된 후 건강과 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한 대규모 역학 조사입니다. 여기서 역학 조사란 특정 집단 전체..